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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부자] 美 청소대행업체 GMB사 박선근 회장
美최고업체 꿈 이룬후 사회봉사…"빌 게이츠 바위라면, 나는 모래"
지금이야 회장님 소릴 듣지만,
35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청춘도 고생의 연속이였다.
29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보험설계사를 첫 직업으로 삼았다.
부족한 영어로 그 어려운 보험을 파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이라면 꼭 갖고 있는 DNA가 그에게도 어김없이 있었다.
다름 아닌 열정이었다.
인종차별에, 부족한 영어에, 첩첩산중을 넘어
그는 설계사 2년 만에 소속 지점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그가 이때 얻은 것은 부(富)가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무서울 게 없다. 노력하면 된다`.
자신감은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1983년. 설계사로서 애틀랜타지역 한인회장을 맡고 있던 그에게 눈물겨운 사연들이 들렸다.
이국만리 미국까지 와서 직장을 잃은 한국인들 이야기였다.
모두 모아보니 12명이 됐다.
그는 이 사람들을 모아 청소대행업을 시작했다.
언어가 안 통해도 되고, 신통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청소업은 그에게 부업이었다.
돈을 벌겠다기보다 일이 없는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은 보험과 자동차를 팔아 먹고살 만하니,
어려운 동포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생각뿐이었다.
"희한한게요,
나를 위해 일을 할 땐 그렇게 힘들고 어렵더니 남을 위해 뛰어다니니
장사가 절로 되더라고요."
정말 그랬다.
12명으로 시작한 청소대행업이 `일 잘한다`는 입소문을 타고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청소를 맡긴 미국인 건물 주인이 성실함에 감동받아 엘리베이터 수리까지 맡겼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플로리다주 올랜도 케네디우주항공센터 청소 입찰에 참여했다.
하지만 낙방의 쓴 맛을 봤다.
그러나 이 일 이후로 박 회장에게 청소업은 본업이 돼 버렸다.
급기야 94년 그는 미국에서 가장 깨끗한 장소 중 하나라는
올랜드 디즈니월드 청소 대행을 거머줘었다.
200개 업체가 참여한 디즈니월드 6곳에 대한 입찰에서
그의 회사 GMB가 미국에서도 유명하다는 청소대행업체 5곳과 함께 선정된 것이다.
그러나 디즈니월드에서 청소로 인정을 받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1년 반 만에 미국계 회사 5곳은 모두 쫓겨났고 GMB만 남았다.
그리고는 디즈니월드 6곳 청소를 모두 이 회사가 맡았다.
다른 회사의 시기와 질투가 오죽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경쟁사들이 가격덤핑에 나서면서 세 번이나 정기입찰에서 낙방했다.
그러나 저가입찰을 받은 회사들은 GMB만큼 질 높은 청소를 제공하지 못했다.
결국 세 번 모두 다시 불려들어가 청소를 맡았다.
플로리다 주정부와 관련 주 내 모든 건물,
한때 삼성전자와 반도체 경쟁을 펼쳤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본사, 노스캘롤라이나의 IBM,
시스코 건물, 네시빌 공항, 콜로라도의 버라이존 등이 모두 GMB 고객이다.
지금은 미국 18개 도시에 사무실과 작업장을 두고 있다.
총직원만 3600명(정식 직원만 1800명).
청소업을 한 지도 27년.
시작한 동기는 어떻든 박 회장 회사는 이제 미국에서 최고 청소 대행업체가 됐다.
비결을 물었다. "일을 건너뛰려 하면 안 돼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내뱉는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 하려고 대충대충합니다. 그래서 건너뛰는 일이 많아요.
미국에서는 그러면 안 됩니다.
처음엔 어렵더라도 또박또박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디 미국에서만 그러랴. 인생의 진리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기 능력만큼 일을 해야지, 그 이상을 넘보면 탈이 납니다.
그리고 돈을 좇으면 돈이 벌리지 않아요."
성공한 사업가로서 차곡차곡 쌓아둔 겸양의 철학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직원들이나 손님들이 나보다 똑똑하면 사업이 더 잘된다"고 했다.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와 비슷해 보인다.
직원들을 모시고 많이 들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는 애틀랜타에서 이제 사업가보다 사회봉사자로 더 유명하다.
취재 전에 공신력 있는 누군가에게 소개받을 때부터
`사회봉사가 주업인 분`으로 소개받긴 했다.
"빌 게이트가 바위라면 난 모래"라고 스스로 몸을 낮췄다.
"사회에서 준 것이므로 사회로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게 박 회장 지론이다.
회사는 `그보다 능력 있고 일 더 잘하는` 사장에게 맡겼다.
어디서 봉사하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다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찾아다니는 비영리 사회단체 이름이 빼곡하다.
전직이거나 현직으로 활동 중인 비영리단체만 어림잡아 20곳.
요즘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봉사활동은 교육문제다.
특히 고교를 중퇴한 미국 젊은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들을 찾아다니며 강의도 하고, 대화도 나눈다.
명예 봉사직인 조지아주 항만공사 부회장직도 요즘 그가 열성을 보이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2006년엔 `패트릭 헨리`상을 수상했다.
미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큰 사람들에게 주는 상으로 미국에서도 권위가 높기로 유명하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나면서 잊었던 명함을 청했다.
그러자 두둠한 지갑을 꺼낸다.
10년은 돼 보이는 낡은 지갑에서 그는 명함과 함께 한글로 써인
미국 국가가 인쇄된 종이도 같이 건넸다.
그는 "나에게 기회를 허락해준 미국을 사랑하고 아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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